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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볍게 읽는 서양미술사 이야기 #6_사실주의
    서양미술사 이야기 2022. 1. 12.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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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_사실주의

    "보이는 것이 진실"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사이에서 예술적인 격론이 오가던 19세기 전반기 이후, 미술계를 지배하게 될 사실주의 사조가 1840년경부터 1870년대까지 프랑스 회화에 등장하였다. 당시 미술뿐만 아니라 문학에서도 펼쳐진 이 운동은 예술가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동시대의 생활상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진실되게 기록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신고전주의가 추구한 고상한 주제와 매끈한 화면은 물론 낭만주의의 주관적이고 격정적인 표현 역시 거부하였다. 리얼리스트들의 화폭에는 도시 노동자와 농민을 포함한 당대의 인물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자연과 사물들이 담기게 되었다. 19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시작된 사실주의는 점차 유럽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었고 영국과 미국에서 독자적인 형태로 전개되기도 했다.


    <1> 프랑스 사실주의

     

     사실주의 운동의 선구자는 귀스타브 쿠르베(1819~77)이다. 실용주의를 신봉한 그는 천사를 그려보라는 주문을 받자 "나는 천사를 본 적 없다. 나에게 천사를 보여준다면 그려 보겠다"고 대답했다. 그의 신조는 "망막에 비치지 않는 것은 그리지 말라"였다. 그는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옹호했으며 나폴레옹 동상을 부수었다는 혐의로 6개월 동안 감옥에 들어가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쿠르베는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작품 <내 화실의 내부>가 심사위원들에 의해 전시를 거부당하자 개인 전람회장을 만들고 '사실주의 전시관'이라 이름 붙였는데, 사상 유레없는 단독 전시였다. 쿠르베는 전통을 중시하는 미술의 과장된 표현방식을 거부하였고 현실세계에서 체험하고 포착한 경험정보와 시각정보를 가감 없이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을 추구하였다. 그의 그림속에 등장하는 일상의 일에 몰두해있는 하층 계급의 사람들은 일상의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지닌 어떤 초월적이고 윤리적인 가치를 일깨우는 느낌을 준다.

     

    쿠르베 "내 화실의 내부", 1854~55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

     

    쿠르베 "돌을 깨는 사람들", 1849년, 드레스덴 국립 미술관

     

      l 바르비종유파 l  바르비종유파 프랑스에서는 바르비종 유파라는 일단의 풍경화가들이 이상화된 모습보다 사실적인 풍경화를 그리며 미술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1830년부터 작품 활동을 벌이기 시작한 이들은 바르비종이라는 마을의 야외에서 그림을 그렸다. 이 유파에 속한 인물 가운데 가장 유명한 화가는 밀레코로이다.

     

      l 밀레 l  장 프랑수아 밀레(1814~75)는 씨 뿌리고 거두는 등 일하는 농부들의 그림을 주로 그렸다. 농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하찮아 보이는 농부들의 일을 숭고하게 표현'했다. 이전의 그림에서 농부는 거의 예외없이 얼간이로 묘사되었지만 밀레는 그들을 존엄하고 강인하게 묘사하고 있다.

     

    밀레 "이삭줍기", 1857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

     

     

    <2> 미국 사실주의

     

     유럽을 풍미한 19세기의 리얼리즘은 미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표적인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인 토마스 에킨스(1844~1916)는 타협할 줄 모르는 사실주의자로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그리기 위해 모델의 손을 진짜 십자가에 묶어놓을 정도였다.

     

     그는 직접 시체를 해부하면서 해부학적인 정확성과 지식을 얻었고 의과대학 학생들에게 강의를 할 정도로 정통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그림에서 원근법을 정확하게 적용하고자 수학적인 비례에 따라 도면을 그렸는데 격자 모양의 도면에 정밀하게 사물의 구조를 소묘해서 옮겨 그렸다.

     

     1870년 이후부터 주로 초상화 작업에 몰두했으나 대상을 결코 미화하지 않는 탓에 그가 그린 초상화의 약 10퍼센트가 파괴되었을 정도로 주문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에킨스는 19세기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로 여겨지고 있으며 많은 비평가들이 그를 미국이 배출한 가장 위대한 화가로 꼽고 있다.

     

    에킨스 "애그뉴의 임상 실험실", 1889년, 필라델피아 펜실베니아 대학

     

     

     

    참고서적 "클릭, 서양미술사 동굴벽화에서 개념미술까지", "사조와 장르", "음악미술 개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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