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가볍게 읽는 서양미술사 이야기 #3_로코코
    서양미술사 이야기 2022. 1. 8. 10:18
    728x90
    반응형

    #3_로코코

    "장식예술"

     

     로코코 미술은 루이 15세가 통치한 1723~74년 동안 파리에서 성행했던 미술사조이다. 1760년 무렵 프랑스에서는 이미 뒤떨어진 유행이 되었으나 독일,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중부 유럽에서는 18세기 말까지 사치스러운 궁전이나 교회를 장식하는 데 널리 유행했다.

     

     로코코(Rococo)는 로카이유(rocaille)에서 비롯된 용어로 원래 더위를 피하기 위한 석굴이나 분수를 장식하는 데에 쓰이는 조약돌 혹은 조개 장식을 말하는 로카이유(rocaille)에서 유래된 것으로 주로 실내장식에서 쓰이는 용어이다. 


    <1> 로코코의 특징

     

     18세기 유행했던 장식의 양식으로 바로크 양식에 이어 신고전주의보다 앞선 양식을 가리킨다. 직선을 싫어하고 휘어지거나 굽어진, 정교한 장식을 추구하는 점에서 바로크와 유사하나 힘찬 바로크와 달리 로코코는 우아, 경쾌함을 추구하고 S자형의 곡선, 이국적인 (특히 중국풍취) 풍취가 두드러졌다. 이런 변화는 바로크 시대의 장엄하고 화려한 궁전에 대해, 신시대의 사교장인 우아한 살롱의 등장과 유력한 궁정부인들의 취미에서 비롯된 영향이 컸다.

     

     저택의 마루는 나무판 위에 복잡하고 섬세한 문양들을 상감하였고 가구들은 주로 곡선형으로 최고급 고블랭산 소파천을 씌우거나 상아와 귀갑으로 장식했다. 옷이나 은제 식기들, 도자기도 꽃무늬와 조가비, 나뭇잎 같은 소용돌이 장식이 달린 곳선으로 했는데, 말에는 깃털과 보석으로 장식한 마구를 달았다. 로코코 예술은 밝고 우아, 섬세함을 추구한 장식적인 요소가 강하였으나 비실용적이었다.

     

     

    <2> 관능과 쾌락을 추구한 그림들

     

     1715년 루이 14세가 죽자, 귀족들은 베르사유 궁을 버리고 로코코 양식으로 꾸민 자신들의 저택이 있는 파리로 몰려들었다. 쾌락만을 추구한 귀족들의 삶은 앙투안 와토(Antonie Watteau, 1684~1721), 프랑수아 부셰(Francois Boycher, 1703~70), 장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e Fragonard, 1732~1806)의 그림에서 드러난다.

     

    부셰 "목욕하는 다이애나", 1742년, 파리 루브르 박물관

      l 프랑수아 부셰 l  부셰의 그림은 사치스럽고 감상적인 내용과 에로틱한 여인의 누드로 당시 프랑스 상류사회에서 인기가 많았다. 부셰는 깃털 같은 나무와 구름, 양떼들 사이에서 사랑의 유희를 즐기고 있는 잘 차려입은 목동과 양치는 아가씨를 즐겨 그렸다. 특히 요염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분홍빛 피부의 누드화로 방탕한 귀족계급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프라고나르 "그네", 1768년, 런던 월러스 컬렉션

      l 장오노레 프라고나르 l  프라나고르 "그네" 그림은 로코코 시대 관능과 쾌락을 추구하던 미술후원자들의 취향을 잘 반영하고 있다. 육체미를 자랑하는 젊고 아름다운 여인과 이를 훔쳐보며 희희낙락하는 귀족 애인, 뒤에서 은밀히 그네를 당기는 남편의 모습은 당시 공공연하게 만연하던 외설을 표현하고 있다.

     

     

     

    참고서적  "클릭, 서양미술사 동굴벽화에서 개념미술까지", "미술대사전(용어편)"

     

    728x90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