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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읽는 서양미술사 이야기 #8_후기 인상주의서양미술사 이야기 2022. 1. 23. 16:06728x90반응형
#8_후기 인상주의
"흐르는 색"
후기 인상주의는 쇠라, 고갱, 세잔, 반 고흐를 포함하는 프랑스의 예술 사조이다. 1880~1905년 사이 후기 인상주의의 화풍은 선배 인상주의자들의 혁신적인 요소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한순간의 인상을 포착하는 인상주의에만 만족하지 않고 인상파의 작품을 보다 본질적이고 견고하게 만들고 싶어 했다.
후기 인상주의는 인상주의와 달리 작가들의 사후에 붙여진 명칭으로 이는 인상주의자들 이후 유럽 각지에서 주목받은 20세기 초까지의 진보적인 화가들을 아우르기 위해 고안된 것일 뿐, 하나의 그룹이나 작업의 공통된 스타일을 지칭하는 용어는 아니었다.
쇠라와 세잔은 보다 견고하고 과학적인 회화를 지향했고, 쇠라는 점묘법을, 세잔은 색면을 개발했다. 고갱과 반고흐는 마치 후기 낭만주의자들 같이 빛과 색채를 통한 감각과 감정을 표현하는데 충실했다.
<1> 쇠라 "점묘화가"
조르주 쇠라(1869~91)의 과학적인 '회화 제작법'은 '점묘법'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혼합되지 않은 순색의 작은 색점들을 캔버스 전체에 찍어가며 행태를 완성해가는 방식이다. 쇠라는 보색 체계를 이론화해 이것들을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더 빛나는 광도의 색채로 보이게끔 했다.
쇠라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1884~86년 이러한 작업방식은 매우 힘든 작업을 요하는 것이어서 그는 10년 동안의 작가 생활동안 오직 7점의 작품만을 남겼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제작하는 데에는 꼬박 2년이 걸렸다. 쇠라는 인상주의의 밝고 혼합되지 않은 색채와 야외 풍경의 묘사를 계승했지만 엄격하게 계산된 패턴과 기하학적 형태는 그 자신이 방법이었다.
<2> 세잔 "사물의 본질"
법학을 공부하다 화가의 길로 들어선 세잔(1839~1906)은 1874년 첫번째 인상파 단체전에 함께 참여한다. 그러나 세잔의 그림에 대한 대중들의 혹평으로 1886년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의 예술에만 전념하게 된다. 1895년 첫 번째 단독 전시회가 개최되면서 '철인'으로 불리며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세잔의 미술이 동시대에는 급진적으로 받아들여졌으나 지금에 와서 추앙받는 이유는 화면의 외형을 다루는 새로운 방식 때문이다. "자연을 원통과 구체, 원추형으로 해석하라"는 것은 그의 유명한 격언이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그는 특정한 사물의 외형을 단순화시켜 본질에 가까운 거의 추상적인 형태로 표현했다.
세잔 "생 빅투아르 산", 1904~1906년 이러한 특징은 정물뿐만 아니라 풍경과 인물을 그린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생트 빅투아르 산> 연작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자연의 견고함, 그 본질을 그리기 위해 대담한 색체와 단단한 터치로 캔버스 위에 새겨졌고 이것이 역설적으로 더욱 추상적인 화면을 만들어냈다. <목욕하는 사람들> 역시 서구미술의 전통적인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세잔의 손을 거쳐 사물의 외형을 근본적인 요소들로 압축하는 새로운 리얼리티를 창조함으로써 이제까지의 미술을 해방시키는 역할을 한다.
세잔 "대 수욕도", 1899~1909년 <3> 고갱 "색채는 생명"
폴 고갱(1848~1903)은 증권시장에서 일하다 시장의 붕괴로 일자리를 잃고 화가의 길을 가게 된다. 1886년 서른다섯 살의 고갱은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퐁타벵에서 3개월을 지낸다. 브르타뉴 지방은 원시에 가까운 풍경을 갖고 있어 그는 자신의 그림에서 원시적인 감정과 상상력이라는 회화의 근본원리를 간직해야 한다고 믿었다.
<황색 예수>에서 고갱의 얼굴을 한 예수는 완전히 노란색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나무들은 주황색으로 채색되어 있다. 그는 색채 효과를 감소시킨다고 믿어 원근법이나 명암법의 사용을 거부했다. 고갱은 사물의 표피적인 외관을 그대로 그리지 않고 색채 변환과 형체 왜곡을 통해 그의 감정을 전달하려 했다.
고갱 "이아 오라나 마리아", 1892년 고갱은 말기의 10년을 남태평양에서 보냈는데, 13살 먹은 타히티 원주민 소녀와 동거하며 생동감 넘치는 원색의 상징적인 회화들을 만들었다. 고갱이 사용한 평면적인 형태와 자의적으로 사용한 강렬한 색채, 사실을 주관적인 감정으로 표현한 기법은 널리 다른 화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4> 반 고흐 "고통받은 화가"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90)의 예술적 신조는 "네가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라"였다고 한다. 1886년 파리로 넘어온 고흐는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아 짧게 끊어지는 화필과 밝은 보색의 색상 체계를 사용하게 된다.
많은 이들이 고흐의 그림에 나타나는 왜곡된 형체와 폭발적으로 대조되는 색채들을 정신 분열증의 증거로 해석하고 있다. 그는 조울증에 시달렸고 이를 다스리기 위해 10년 동안 800여 점의 유화와 소묘화를 남겼다.
고흐 "별이 빛나는 밤", 1889년 1888~90년 사이 그는 아를 지방의 생 레미에 있는 요양원을 거쳐 의사 가셰의 보호 아래 오베르에 머물렀는데 이곳에서 미술사상 걸작들을 연달아 그렸다. 생 레미의 요양원에 환자로 있으면서 그린 <별이 빛나는 밤>은 이 시기 작품의 특징인 '고요한 격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가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 제작한 <까마귀가 나는 보리밭>은 어둡고 낮은 하늘과 불길한 까마귀 떼로 화가의 죽음과 연관해 해석되기도 한다.
고흐 "까마귀가 나는 보리밭", 1890년 참고서적 "클릭, 서양미술사 동굴벽화에서 개념미술까지", "사조와 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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