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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 '고암' 이응노 (1904~1989)
    아트 컬렉터를 위한 작가소개/대가_작고, 원로작가 2022. 3. 7.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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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암 이응노"

     

     1904년 충남 홍성의 의병장 가문에서 태어난 이응노는 그림을 배우고자 열다섯에 집을 나와 충남 당진의 송태회 선생 문하생으로 처음 먹을 배웠다. 그 후 서울로 올라가 장안 최고의 화가인 김규진의 문하생으로 들어간다. 김규진은 서예가이면서 묵화에도 뛰어난 인물이었다. 고종의 아들인 영친왕에게 서법을 가르치기도 하였고, 황실 사진사로 고종의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의 그림은 '조선의 마지막 궁중 장식화'로 통하는 창덕궁 희정당 벽화로 남아 있다.

     

     이응노는 대나무에 탁월하고 죽순처럼 빠르게 배운다 하여 스승에게 죽사라는 호를 받았다. 1933년부터 '고암'이라는 호를 쓰기 전까지 그는 죽사였다. 1924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청죽"으로 입선했고 1931년에는 대나무 그림으로 최고상인 특선을 받았다.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 전반에는 일본에 유학하여 새로운 산수화풍을 배우기도 했다.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온 이응노는 일본 미술의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고유의 화풍을 강조하는 단구미술원을 조직했고, 남산에 고암화숙을 차려 제자들을 가르쳤다. 한국전쟁 전까지는 홍익대학교 교수로도 활동했다. 1957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국현대미술전'에 출품한 작품이 뉴욕 현대미술관에 소장된 것에 자신감을 얻어 해외로 진출하게 된다.

     

     1956년 프랑스 평론가 자크 라센느의 초청을 받은 후 1958년 51세의 나이로 프랑스로 건너간다. 이후 서독에서 1년간 채류하며 캔버스를 찢은 폰타나, 캔버스 위에 돌을 매달아 놓은 라우센버그 등의 작품을 통해 충격을 받아 이응노는 대상의 사실적 모방에서 벗어나 스스로 '반추상적 표현'이라고 언급한 실험적 양식을 발전시켰다.

     

     

     이응노는 당시 프랑스 미술계의 흐름이었던 앵포르멜 회화 양식을 흡수한 후, 전통 필묵과 결합해 동양적 감수성이 가미된 새로운 추상을 창작했다. 1962년 앵포르멜의 근거지인 파케티 화랑의 전속화가가 되어 안정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한다. 콜라주 기법을 사용한 추상작품을 대거 선보였으며 '문자추상'의 독창적인 화풍을 정립하여 유럽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1967년 동백림 사건이 터진다. 월북한 아들을 만나게 해준다는 말에 베를린으로 찾아간 것이 화근이 되어 2년 6개월을 복역하게 되고 감옥에서 화가는 눈물과 땀으로 옥중화 300여 점을 그린다. "나에게는 학교도는 교도소였다"라고 한 이응노는 옥중생활을 통해 사회의식을 가진 작가로 변화하게 된다.

     

     

     1969년 프랑스로 돌아갔지만 한국 정부의 탄압이 계속되었다. 프랑스는 그런 이응노에게 적극적으로 귀화를 권했고, 결국 이를 받아들인 작가를 프랑스의 대표화가로서 대우했다. 1970년대 이응노는 문자추상을 서체의 부드러운 흐름에서 벗어나 건축적으로 단단한 조형미가 돋보이는 문자추상 양식으로 심화시켰다.

     

     이응노의 작품에서 인간의 형상은 항상 중심에 있었다. 1960년대 인간의 형태를 문자처럼 변형한 문자시리즈에서 1980년을 기점으로 1989년 작고하기까지 제작된 '군상' 시리즈는 작가의 인생관과 예술관이 집약적으로 담겨 있는 이응노 예술의 절정이라 할 수 있다. 

     

     

     이응노가 대나무 잎에서 끌어낸 군상은 우리 민족을 연상시킨다. 생전의 작가는 춤추는 사람들을 그린 자신의 작품을 두고 "통일된 광장에서 환희의 춤을 추는 남북의 사람들"이라며 '통일무'임을 강조했다. 1988년의 한 인터뷰에서는 "내 그림의 제목은 모두 '평화'라고 붙이고 싶다'며 말하기도 했다. 이응노의 작품은 현재 뉴욕현대미술관(MOMA), 파리의 퐁피두 센터 등, 전 세계 각국에 소장되어 있다.

     

     

      l 이응노 작가의 이야기를 마치며... l  이응노 작가의 작품은 단색화가들과는 전혀 다른 화풍과 메세지를 전달한다. 이 시대의 거장들은 모두 일제 치하, 한국전쟁, 민주화 등, 격변의 시대를 겪었고 그 경험을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하였는데 작가는 인간, 통일, 평화라는 주제로 우리에게 희망을 보여준다.

     

     기회가 된다면 대전에 위치한 이응노 미술관을 방문하길 권한다. 이응노의 작품과 세계적인 프랑스 건축가 로랑 보두엥이 설계한 이응노 미술관도 함께 볼 수 있는 일석이조의 관람이라 생각한다. 국내 옥션에 등장하는 이응노 작가의 작품은 문자추상이 대부분으로 입찰가와 응찰수를 보면 여전히 이응노에 대한 평가는 한국보다 프랑스에서 훨씬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서적 "살아남은 그림들"
    참고자료 "이응노 미술관 홈페이지 예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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