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렉터조과장 2022. 2. 14.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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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법"

 

 193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난 박서보는 중학교 때 그려낸 포스터가 전국 1등 상을 받으며 그림에 애정을 갖게 되었다. 홍익대학교에 입학하였지만 입학하던 그해 한국전쟁이 발발하였고 일제 치하의 핍박과 전쟁의 고통을 겪은 그는 울분을 화폭에 담았다. 

 

 젊은 나이에 홍익대학교 교수가 된 박서보는 개혁에 앞장서다 결국 학교에 사표를 낸다. 졸지에 백수가 된 그는 1967년 어느 날 자신의 아들이 종이 위에 마구 연필을 휘갈긴 것을 보고 비움을 화폭에 구현할 방법을 깨우친다. 이때부터 시작된 박서보의 '묘법' 연작은 반세기가 이어진다. 1982년 작가가 전시 때 300만원에 내놓아도 잘 팔리지 않던 작품이 2017년 홍콩 크리스트 경매에서 약 14억 7천만원에 팔릴 정도로 그의 작품은 세계적 명품이 됐다.

 

 박서보의 작품은 그렸다기보다 긋고, 새겼다고 하는게 옳다. 초기 묘법이 일명 '연필 묘법'으로 불린다면 1980년대 묘법은 '지그재그 묘법'으로 확장된다. 1960년대부터 발표한 묘법은 1970년대까지 캔버스를 물감으로 뒤덮고 그것이 마르기 전에 연필로 선을 긋고, 또 그것을 물감으로 지워버리고, 다시 그 위에 선을 긋는 행위를 되풀이한다. 물렁물렁한 물감은 연필 긋기로 밀려나고 부풀어 오르기도 한다. 연필로 그리고 물감으로 지우는 행위의 반복, 그 과정과 결과가 바로 작품이 되었다.

 

박서보 "묘법 No.11-78", 1978

 

 1980년대 이후 묘법은 한지와 수성 안료로 작품을 제작한다. 한지 조각을 물에 불려 캔버스에 붙이고 그 위를 심이 굵은 연필, 나무꼬챙이, 화가가 고안한 쇠붙이 같은 도구로 지그재그로 그어 화면을 만들어 낸다. 화면에는 한지의 오돌도돌한 자국, 미세한 굴곡이 만들어지고 이는 살아 꿈틀되는 생명력과 의지로 나타난다.

 

박서보 "묘법 No.900205", 1991

 

 2000년대 묘법은 캔버스에 한지를 붙이고 규칙적인 붓질을 반복해 수직의 움푹한 이랑을 만들어 간다. 이 움푹한 이랑 사이에서 밀려난 한지는 골이 돌출되며 일종의 부조 효과를 띤다. 평면 회화이면서도 시선의 움직임에 따라 화면이 달리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질서 정연한 화면속에 단순한 사각 형태가 군데군데 노출되어 있다. 작가는 스스로 본인의 작품은 건축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며 그 사각 면은 정신이 호흡하는 일종의 '숨구멍'이라 하였다.

 

 "우리 집이 밤섬이 한눈에 보이는 한강북로에 있다고, 집에서 바라다본 한강 풍경이 기막히게 아름다워. 계절과 시간에 따라 풍경이 변해. 밤에는 한강이 보석 같다고. 특히 한강의 교각이 안개에 따라,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하게 보이는 거야. 기본적인 형태는 한강 다리에서 나온 거야."

박서보 "묘법 No.070429", 2007

 

 박서보의 작업은 두 개의 레일을 기초로 하여 정리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조형적 측면이 강조되는 회화적 방법이며, 두 번째는 내용적 측면으로서 그의 삶과 인간에 대한 은유적 반영에 관한 것이다. 묘법은 작가 스스로 '포기와 체념의 미학'이라 말한다. 그림은 수신을 위한 수단이며 묘법은 마음을 비우는 행위로써 그의 묘법에는 우리의 정신, 동양의 자연관과 세계관이 깔려 있다.

 

 박서보 화백은 1970년 말부터 1980년 초까지 한국미협 이사장, 부이사장을 맡았으며 홍익대를 이끌어온 미술교육자로서도 중요한 위치를 지니고 있다. 1986년에서 1990년까지 미대 학장을 맡아 많은 교육행정을 실행했다. 전공 학과 분리, 판화과와 예술학과 신설, 미술학 박사과정 신설 등의 굵직한 업적을 남겼다. 1990년대부터 박서보는 작품 외적인 일을 접고 창작 활동에 몰입했다. 박서보는 미술운동가로서 교육자로서 모두 한국미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이는 한국미술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박서보 "묘법 No.100524", 2010

 

 

  l 박서보 작가의 이야기를 마치며... l  박서보 작가의 작품은 사진으로 보는 것과 달리 실제 마주했을때 주는 전달력 차이가 크다. 한지가 주는 독특한 질감과 색감, 보는 각도와 빛의 방향에 따라 감상자에게 입체적으로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데 이는 어마어마한 흡입력을 부여하게 된다. 

 

 최근 작품들을 보면 다양한 색을 사용하여 아주 세련되어 보인다. 동양의 정신과 미를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표현했기 때문에 지금도 사랑받는 작가이며 작품일 것이다. 이는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한 박서보 작가의 노력의 산물이라 생각한다.

 

 2030세대의 젊은 아트컬렉터들의 시선에도 박서보 작가의 작품이 주는 감동과 아우라는 경이롭게 여겨지고 있다. 이는 아무리 시대의 변화가 빠르고 인스턴트적, 소비적인 문화가 팽배한 세상이지만 한명의 장인이 세월과 정신을 녹여 만든 작품은 세대를 초월하는 힘이 있음을 보여준다.

 

 

 

참고서적 "살아남은 그림들", "두산백과"
참고자료 "서보미술문화재단", "미술가 박서보" 네이버 캐스트
참고기사 [마크 테토의 아트스페이스 14탄] 비우며 채우는 예술, 박서보 작가, 리빙센스, 2020.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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